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왜 알 몸이었나?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41 에서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는 빌라도 총독의 관저를 나섰다.
좁다란 골목길. 양옆에는 예수의 재판을 지켜보던 유대인들이 길을 가득 메웠을 터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예수를 향해 야유와 멸시를 쏟아냈다.
그 사이를 예수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십자가의 무게는 약 70㎏.
어른 한 사람 무게를 감당하기에 예수의 몸은 이미 상해 있었다.
동물의 뼈와 쇳조각이 달린 채찍이 몸에 박힐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을 터이다.
그런 피투성이 몸으로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떠났다.
나는 빌라도 총독의 관저 앞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발 밑의 돌들. ‘예수는 이 돌의 어딘가를 디뎠겠지.
한걸음, 또 한걸음. 그렇게 비틀대면서 걸었겠지.’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는 총독 관저 앞 골목의 모퉁이를 돌았다.
거기서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그가 누구였을까.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는 10대의 나이에 예수를 가졌다. 성령의 힘으로 잉태하는 초월적 사건을 온몸으로 뚫고 왔다.
이제 그녀의 눈 앞에,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식이 서 있다. 아들의 어깨에는 십자가가 얹혀 있었다.
한두 시간만 흘러도 자식은 그 십자가에 매달릴 터이다.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는 아들. 그녀의 눈 앞에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울었겠지. 나는 ‘마리아의 눈물’을 묵상했다.
동양의 어머니든, 서양의 어머니든 똑같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사형장을 향해 발을 떼는 자식을 두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 말이다. 마리아의 어깨는 얼마나 들썩였을까.
마리아의 얼굴은 눈물로 젖었겠지. 그녀의 몸과 마음, 어디 하나 피눈물이 솟구치지 않는 곳이 있었을까.
당시 유대 여자들은 초경을 하는 나이가 되면 결혼을 했다. 마리아도 결혼적령기 때 배 속에 예수를 가졌다.
당시 유대 여자들은 초경을 하는 나이가 되면 결혼을 했다. 마리아도 결혼적령기 때 배 속에 예수를 가졌다.
그러니 13~15세쯤 되지 않았을까.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가 30대 초반의 나이였다면 마리아는 40대 중반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젊은 엄마’다. 그러니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에서 그려낸 젊은 마리아가 비현실적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40대 중반의 엄마가 십자가를 짊어진 30대 초반의 아들을 바라본다. 나는 골목 어귀에 서서 ‘그들의 눈’을 생각했다.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눈. 그런 마리아를 바라보는 예수의 눈. 서로의 눈에서 둘은 무엇을 읽었을까.
예수는 말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그런 예수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예수가 말하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걸 깊이 깨닫고 있었을까. 그래서 간장을 끊어내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됐을까.
아니면 마리아는 남들과 똑같은 엄마였을까.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엄마였을까.
사실 예수의 제자들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예수의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마리아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비록 성령으로 잉태한 신비를 겪었다해도 말이다.
만약 마리아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예수의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면,
성경에는 그에 대한 마리아의 말들이 몇 마디라도 기록돼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리아의 ‘평범한 아픔’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리아의 ‘평범한 아픔’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그럴까. 그런 아픔은 우리 모두가 갖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흘리는 눈물이고, 우리 모두가 토하는 비명이다.
그 모두를 우리와 공유하는 마리아가 내게는 더 살갑게 다가온다.
그래서 죽으러 가는 자식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가 내게는 ‘더 큰 마리아’로 다가온다.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에는 모두 14처가 있다.
예수가 재판을 받았던 빌라도 법정이 제1처,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짊어진 곳이 제2처, 예수가 처음 쓰러진 곳이 제3처다.
그런 식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가 일화를 하나씩 남긴 곳마다 ‘처(處)’가 남아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순례객들이 ‘십자가의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14처마다 걸음을 멈추고 기도를 했다.
예수가 마리아를 만났던 장소는 제4처다.
그 장소에는 아르메니안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교회 지하층에는 모자이크로 된 신발이 있다.
마리아가 그곳에 서서 예수를 기다렸다는 일화가 전해내려온다. 교회 정문 위에는 예수와 마리아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를 짊어진 채 죽으러 가는 예수와 그런 자식의 손을 잡고서 무언가 말을 하려는 마리아다. 아무리 봐도 애틋하다.
나는 그 아래 서서 조각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예수는 눈을 감고 있고, 마리아는 눈을 뜨고 있다.
예수는 가고 있고, 마리아는 붙들고 있다. 예수는 고요하고, 마리아는 요동친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도 요동친다.
불과 800m였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곳에서 못 박혀 숨진 곳까지 말이다. 직선거리는 고작 800m였다.
불과 800m였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곳에서 못 박혀 숨진 곳까지 말이다. 직선거리는 고작 800m였다.
건장한 젊은이라면 한달음에 달려갈 거리였다. 그러나 그 길은 짧지 않았다.
14처 중에서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자신의 가슴을 무너뜨리지 않고서 지나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800m. 오히려 아득한 거리였다. 그건 ‘순간’에서 ‘영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평지가 아니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가 걸었던 길 말이다. 골고다 언덕을 향해 약간씩 경사가 높아지는 오르막길이었다.
70㎏의 십자가를 짊어지면 경사는 더 가파르게 느껴졌을 터이다. 지금은 그 길이 예루살렘 성 안의 시장통을 통과한다.
길 양옆에 온갖 잡화를 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그런 십자가의 길 중간중간 예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지칠 대로 지친 예수는 ‘쿵!’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 직후의 장면이 누가복음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을 뒤따르게 하였다.’(누가복음 23장26절)
예수는 기진맥진했다. 로마의 병사가 아무리 채찍을 내려쳐도 다시 일어나 십자가를 짊어질 기력이 없었을 터이다.
결국 병사들은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했다.
예수는 그 뒤에서 비틀거리며 걸었으리라. 자신이 못박힐 나무 십자가를 앞세운 채 말이다. 그때가 아침이었다.
예수가 향하던 목적지는 골고다 언덕이었다. ‘골고다’는 ‘해골터’라는 뜻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사형장과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이윽고 예수는 골고다에 도착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에게 쓸개즙을 탄 포도주를 건넸다. 일종의 진통제였다.
예수는 맛만 본 뒤 이를 거절했다. 병사들은 땅바닥의 십자가 위에 예수를 눕혔다. 그
리고 못을 박았다. 두 손과 두 발. ‘쾅! 쾅! 쾅!’ 못이 살을 관통할 때마다 예수는 고통에 겨워 이를 악물었으리라.
유대인 가이드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알몸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십자가형에 처해 지는 죄수의 옷을 모두 벗겼다.
예수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후대의 화가들이 차마 속옷도 걸치지 않은 예수의 알몸을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 장소에 성묘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스도교 성지 중의 성지다.
이 교회를 차지하려는 명분으로 유럽과 이슬람이 전쟁을 벌였다. 그게 십자군 전쟁이다.
나는 골고다 언덕 위에 선 성묘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예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은 장소가 나왔다.
바로 옆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곳이었다. 그곳에는 십자가 예수상이 있었다. 순례객들은 줄지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땅은 모두 유리로 덮여 있었다. 오직 한 군데, 십자가 예수 앞에만 바닥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구멍으로 깊숙이 손을 넣었다. 마치 내 안의 심연으로 두레박을 던지듯이 말이다.
그러자 땅이 만져졌다. 예수가 매달렸던 십자가의 땅, 2000년 전의 그 숨결이 손가락끝에 닿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십자가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가방에 있던 조그만 성경을 꺼내서 펼쳤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시각은 오전 9시였다.
마가복음(15장25절)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고 정확한 시각이 기록돼 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땅바닥에 있던 십자가가 똑바로 세워졌다.
그 순간 자신의 체중으로 인해 박힌 못이 손과 발의 뼈를 짓누른다. 때로는 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십자가형을 받는 이의 고통은 수십 배, 수백 배로 증폭된다.
그런 고통을 겪으며 1주일씩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도 한다.
그렇다고 쉬이 죽지도 못한다. 십자가 형에는 그 모든 고통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날은 안식일 하루 전날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낸다.
안식일 당일에 십자가에 시신이 매달려 있는 것은 부정타는 일이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가 일찍 숨을 거두게끔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무려 여섯 시간이 흘렀다.
오후 3시쯤이었다. 예수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 아람어였다.
성경에는 이 대목이 아람어로 기록돼 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란 뜻이다.
그건 구약의 시편 22편에 등장하는 어구이기도 했다.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예수는 시편을 줄줄 외우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대목을 읊었을까. 그것도 절규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을까. 혹자는 거기서 ‘원망’을 읽는다.
하늘을 향해 예수가 원망을 토해낸 것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오히려 거기서 ‘신을 품은 인간’을 본다.
그러한 ‘인간 예수’를 본다. 그런 절규는 비단 예수의 것만이 아니다.
우리도 하루에 수십 번씩 내뱉고 있는 외침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마더 데레사 수녀도 그랬다. 그녀가 생전에 썼던 편지에는 ‘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사랑이었던 저는 지금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의 신앙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의 부름에 맹종한 저는 진정 실수를 한 것일까요’라는 구절이 담겨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더 데레사 수녀가 신을 부정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게 아니다.
“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은 신의 속성과 하나됨을 체험한 이들이 내뱉는 고백이다.
그런 하나됨이 지속되지 않을 때 토해내는 아쉬움이다.
뒤집어 말하면 마더 데레사가 그만큼 ‘신의 속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는 반증이다.
하나됨에서 버림받음, 다시 버림받음에서 하나됨을 되풀이하는 이들이 쏟아내는 일종의 절규이자 찬사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런 절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까. 아니다.
굳이 하나됨을 붙들지 않아도 항상 하나임을 깨닫는다면 그런 ‘절규’조차 사라진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내가 눈을 뜨는 순간에도 ‘신의 속성’이 언제나 내 안에 거함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예수의 외침을 듣고서 유대인들은 말했다.
“저것 봐! 엘리야를 부르네”(마가복음 15장35절)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해면에 신포도주를 적셔서 예수에게 마시게 했다.
옆에 있던 사람은 그 순간에도 예수를 시험했다.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마태복음 27장49절)
신포도주를 마신 예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지상에서 육신을 가진 예수가 던진 마지막 한마디였다. “다 이루어졌다.”(요한복음 19장30절)
이 말끝에 예수의 고개는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한 마디였다. 어찌보면 예수의 유언이다. “다 이루어졌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teleo(텔레오)’라는 단어를 썼다.
마지막 한 마디였다. 어찌보면 예수의 유언이다. “다 이루어졌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teleo(텔레오)’라는 단어를 썼다.
‘마치다(finish)’ ‘이룩하다(accomplish)’란 뜻도 있고, ‘정착하다, 자리를 잡다(settle)’란 뜻도 있다.
흔히 이 구절을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 의미로 풀이한다. 나는 그런 해석에 동의한다.
동시에 ‘settle(정착하다)’이란 뜻에도 각별히 주목한다. 예수가 “텔레오”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며 정착한 곳은 어디일까.
그렇게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곳은 어디일까. 나는 거기서 예수가 신을 품는 광경, 또한 신이 예수를 품는 광경을 본다.
신의 속성. 그 영원한 평화, 창조의 근원으로 자리를 잡는 예수를 본다.
끝없이 뻗는 가로와 끝없이 뻗는 세로. 영원히 만날 것 같지 않은 둘이 만난다. 딱 한 번 만난다. 거기가 바로 십자가다.
신과 인간도 그렇게 만난다. 예수가 못박힌 곳.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신과 인간이 만난다. 인간과 신이 만난다. 둘이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우리도 그렇게 사형을 당해야 하나? 그래야만 우리도 신을 만날 수 있나?” 그게 아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리하지 않는 이는 자신의 제자가 아니라고 했다.
십자가가 뭘까. 그게 과연 이스라엘의 골고다 언덕 위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소소하고 번잡한 우리의 일상 속에 그런 십자가가 숨어 있다.
내가 꺾지 못하는 나의 고집, 나의 잣대, 나의 욕망이 바로 내가 짊어질 십자가다.
고집이 뭔가. 꺾고 싶지 않은 나의 욕망이다. 잣대가 뭔가. 꺾고 싶지 않은 나의 틀이다.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게 무너지길 바라지 않는다. 고집이 무너지고, 잣대가 무너지면 마치 내가 죽을 것만 같다. 그래서 싫다. 죽도록 싫다.
그게 바로 십자가다. 내가 짊어질 십자가다. 그래서 쉽지 않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이 말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예수는 왜 십자가를 짊어졌을까. 그건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지 길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 길을 통해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고집을 녹이고, 잣대를 녹이고, 욕망을 녹인다. 그게 바로 ‘죄사함’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사해진다’. 거기에는 대전제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사해진다’. 거기에는 대전제가 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처럼 못박히는 ‘나의 십자가 죽음’을 내가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래야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된다. 나와 예수가 하나가 된다. 요즘은 이 과정이 종종 생략된다. 예수만 죽고 나는 산다.
예수가 죽었으니 나는 굳이 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예수에게만 십자가가 필요하지, 내게는 십자가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말한다. 예수는 달리 말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는 이들은 나의 제자가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 성경에는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고 기록돼 있다.
로마 병사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의 죽음을 확인했다. 예수 양옆에 매달린 죄수들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가 이미 숨진 것을 확인한 병사는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대신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성묘교회의 바닥에는 붉은 돌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순례객들이 무릎을 꿇고 그 돌에 손을 얹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묘교회의 바닥에는 붉은 돌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순례객들이 무릎을 꿇고 그 돌에 손을 얹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을 눕혔던 돌이다.
2000년 전 바로 이 돌 위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예수의 주검이 놓였다고 한다.
나는 순례객들 틈에 끼어서 무릎을 꿇었다. 그 돌에 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숨이 끓어진 예수의 육신도 이처럼 차가웠을까.
그렇게 차가워진 예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리아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을까.
예수 당시 유대인의 장례풍습에는 일종의 ‘상여’가 있었다.
시신을 들것 위에 노출된 채로 놓거나 관에 넣어 뚜껑을 연 채로 운반했다. 여인들이 상여 행렬의 맨 앞에 섰다.
유대인들은 선악과를 먹은 이브가 이 세상에 죽음을 처음으로 끌어들였다고 여겼다.
그래서 장례 행렬의 선두에도 여자들이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상여를 매는 일을 큰 덕을 쌓는 것이라 여겼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상여를 맬 수 있도록 자주 교체했다.
예수의 죽음에는 그런 상여도 없었다. 신을 모독한 죄수의 죽음이기에 더욱 그랬다.
예수의 죽음에는 그런 상여도 없었다. 신을 모독한 죄수의 죽음이기에 더욱 그랬다.
예수의 제자 중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있었다. 그는 부유했다.
그가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청한 뒤 허락을 받았다.
제자들은 시신을 아마포로 감싼 뒤 바위동굴 무덤으로 옮겼다. 무덤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았다.
성전 경비병들이 그 앞을 지켰다. 생전에 “내가 죽은 후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겠다”고 장담했던 예수의 말 때문이었다. 유대의 수석사제들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내고서 되살아났다고 기만할 수 있다”며 무덤을 지키게 했다.
나는 그 무덤을 찾아갔다. 성묘교회 안에 그 무덤이 있었다. 무덤 앞에는 기다란 순례객들의 줄이 있었다.
무덤 안은 대체 어떤 곳일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 어마어마한 사건이 발생한 물리적 공간.
그 안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예수 부활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앞에 늘어선 줄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내 가슴도 덩달아 쿵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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