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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및모임]/연꽃마당

"추자도"

by 만경사람(萬頃人) 2023. 10. 28.

2023'   10. 13~ 14 ( 1박2일정)  추자도입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행길. 지난 7월에 이루지 못한 꿈.

추자도로 변경.

우여곡절 끝에 5명이 자가부담으로 헌영의 승합차량을 이용하여,진도의 팽목항에서 08시 추자행 여객선을 승선하기 위하여, 당일 새벽 헌영의 집에서 3시에 출발. 상영→ 본인 →인숙 → 원택을 전주대 정문에서 픽업하는 것으로부터 쉽지않은

1박2일정이 시작되었다. 모든 일정은 헌영에게 위임, 배편은 이미 예약을 해 두둔 상태다.

출발한지 3시간여를 논스톱으로 내달려 진주에 도착.황태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아픔있는 팽목항으로.....

 

1일차 당일-.

팽목항을 출발한 "산타모니카호"는 시속 80km속도로 질주하여, 정확히 45분만에 상추자도 선착장에  안착하여 하선하니,

비릿한 바다내음이 평상시와는 달리 정겹다.

소문으로만 듣던 섬 추자도.

바다낚시 외에는 할게 없고,느낄게 없으며,진짜 볼 것 없는 섬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추자도.

이 섬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이곳의  1800여 도민들이 제주도와는 또다른 삶의 방식으로 이 섬을 지키고 있으며, 조기잡이의 성지로 알려져 있었으며, 때마침 공교롭게도 15회째나 되는 "추자도 참조기축제"가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어,  활기가 넘쳐나는 섬이었음을 실감했다.

숙소인 "그린펜션"의 여장을 풀고, 이내 올레18-1 코스가 있는 상추자도 올레길 트랙킹을 강행하는 걸로 상추자도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선착장 앞쪽 능선에 최영장군의 사당이 있는 곳에서 부터 한바퀴를 삥도는 코스를 선택.

어둠속의 3시.

진도대교를 건너는 달리 중.

지울 수 없는 아픔의 흔적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아픔의 흔적들이 이곳에 서려 있었다.

시속 80km 속도룰 달릴 수 있도록 건조된 산타모니카호의 늘씬한 위용

비행기 좌석보다 무척 편해서 좋았고, 일기가 너무 좋아 흔들림없이 45분간 아주 편안한 승선이었다.

아픔의 팽목항

이들은 우리가 올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깨끗하다는 첫 인상감.

알고 보니, 주민들의 부단한쓰레기 줍기와 청소 덕분이었다.

추자도 선착장 주변모습.

그린펜션

제주라는 이니셜이 거짓말 같다.

 

자세히 보니, 돌담으로 둘러쌓인 성곽들이 보였다.

외세의 침략을 막고자한 성일까?

 

 

 

 

 

 

상추자도 전경.

 

 

동네 골목길 벽의 타일벽화가 이채롭다.

 

펜션 주인장님꼐서 운영하는 식당.

당일 점심으로 취식한 고등어조림은 엄지척이 아깝지 않았다.

추지도에 왠 독도 막걸리가 등장할까?

 

2시간여 상추자도 주변을 유람할세.

상추자도 이곳 또한 일제로부터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곳.

해안가를 중심으로 2차대전때 연합군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9개가  포진지를 구축했다 

 

눈물의 십자가- 황경환을 위한 어머니의 눈물어린 십자가.

 

컬컬허던차에  먹걸리로 목도 축였겠다 이젠 축제장에서 국악공연관람으로 여유있게.

후포리 해수욕장의 야경

 

2일차-.

올레코스 인증장소

어제부터 그물 손질만.

도대체 조기잡이는 언제 출항하려는지?

행사장 부스 시식코너에서 귀한 "섭(자연산 홍합)"을 맛 볼 수 있었다.

상추자도(면적 1.3km2 해안선 둘레 8.3km)는 영흥리와 대서리 두개의 마을 형성 되어있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해주는 추자교

추자교의 올레 인증샷

 

 

밟지 말고 쉬었다 가세요,

고사리의 다른 모습.

이끼처럼 낮게 깔려 자라는 것 같다.

일행들은 저만치 멀리 가고 있는데, 바삐 갈길을  붙잡는 녀석들이다 보니, 어찌 그냥 지나 칠 수 있으리까?

 

추자면 신양리 산 20번지

"황경한의 눈물"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 - 황경한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인 황경한이 묻혀있는 곳이다

황사영은 1775년 유명한 남인가문에서 태어나 16세 때 진사시에 합격할 만큼 영특하였다그러나 1790년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 명리를 버리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충북 배론에 피신하여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썼다

이 백서를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체포되고,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으며,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 관노로, 그리고

두살 된 아들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정난주는 1773년 유명한 남인이요 신자 가문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세 때인 1790년 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고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두 살의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격정하여 젖내나는 어린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말한다. 대정 관노로 유배된 그녀는 38년간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주민들을 교화하였다.

그래서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서울 할머니"라는 칭송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838년에 선종하여 대정성지에 문혀 있다

치바위에 놓여진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지금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아니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살 아기는 이곳에 문혀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보이는 바다로 튀어나온 바위가 바로 황경한의 2살때 버려졌던 바위라 한다.

별다른 맛의 국내산 꼼장어 요리를 간만에 이곳에서 맛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가격 또한 한접시에 3만원으로 매우 훌륭했다.

추자 선착장의 해넘이 

안녕 추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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