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권력세습과 관련하여 중국과 북한의 관계, 중국에 체재하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후계자로 급부상한 3남 김정은의 관계가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두 관계는 미묘하게 교차하거나 중첩되면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국제관계를 연상시킨다.
춘추전국시대 적지 않은 제후국에서는 왕위세습과 관련하여 현재의 북-중 관계와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대개 태자가 왕의 신임을 잃는 사정이 발생하고 다른 왕비 소생의 손아래 공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北3대 세습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편 장남인 태자는 물론이고 (새로 책봉된 또는 책봉될 태자와 어머니가) 다른 공자들은 인접국가로 망명함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후일을 도모한다. 그러다 본국에서 정변이 발생하면 자신이 체재하는 국가의 군주나 본국 내 지지 세력의 지원을 받아 귀국해 정권을 장악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성공한 대표적인 제후가 태자는 아니었으되 춘추시대 패자의 지위에까지 오른 진(晉)의 문공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이런 일화는 세습왕조의 경지에 이른 북한과 이를 비호하는 중국의 미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단서가 된다. 만약 김정은 후계체제에서 정변이 발생한다면 그 주도세력은 김정은을 몰아내는 한편 중국에 있는 김정남을 영입하든지 하여 중국의 승인을 얻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보장받고자 할 것이다.
이와 달리 북한 정국이 민중봉기 또는 정변 이후 수습세력이 부각하지 않는 혼미한 상황에 빠지더라도 중국은 무장병력과 함께 김정남을 호송(?)하여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호응하는 세력의 결속과 지지를 구축하면서 북한을 접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어느 경우나 중국은 북한의 3대 세습을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한 터이므로 김정남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돕는 데 대한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김정일 정권의 ‘정당한’ 상속자인 김정남의 ‘요청’에 따라 그의 권력 ‘탈환’을 지원해주는 셈이기 때문에 ‘내정 간섭’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비켜갈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설사 김정은 후계체제가 정국을 수습하고 안정적으로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중국은 처음부터 권력세습을 승인한 후견국가로서, 나아가 김정남 카드를 활용하여 김정은 정권에 수시로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을 중국의 영향력에 묶어둘 수 있는 지속가능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전조는 최근 김정남의 TV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가 조기에 안정이 되든지 아니면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든지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이 얻을 건 많아도 잃을 게 없는, 바둑으로 말하면 꽃놀이패에 해당한다.
中‘김정남 카드’로 개입 명분 확보
권력의 3대 세습을 둘러싼 북-중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패권국은 주변의 약소국에 대해 자국에 유리한 정치적 현상유지를 보장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발발할 수 있는 정치적 사태의 대안적 경로마저 장악하거나 봉쇄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왕조국가나 북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과거 전두환 정부 시절 미국 행정부 역시 집권 초 불안한 전두환 정부를 승인하여 정치적 안정을 지원해주는 한편 이를 대가로 김대중의 석방과 미국 망명을 관철시킴으로써 장차 한국 정치의 민주적 미래에 대한 대안마저 장악하고자 했다. 이렇게 볼 때 정정(政情)이 불안한 약소국이 정권 안보를 대가로 패권국에 의한 농락을 자초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목격되는 국제정치의 진리처럼 여겨진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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