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5. 21 중앙일보의 이 훈범의 세상사 편력 중에서
참 별일 다 있습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성폭행 사건 말입니다.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설령 아쉬운 게(?) 있었더라도,
물불 안 가리는 애들도 아니고 한치 앞도 못 볼 만큼 머리 나쁜 사람도 아닌데 어찌 뒤탈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말이지요.
그는 샴페인 좌파라 불릴 만큼 돈이 많고,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통하는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차기 프랑스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야당 후보이기도 했지요.
게다가 발각될 가능성도 많고, 그만큼 평판이 무너질 위험도 컸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지금 함께 갇혀 있는 잡범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무모하고도 추잡한 범죄를 저질렀을까요.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정신병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음모론도 등장합니다.
화려한 유사 전력과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집권당의 의도를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합니다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한마디로 권력의 오만이 초래한 필연적인 파멸이라는 결론입니다.
흔히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 권력이 크건 작건 간에) 세상이 바뀐 경험을 합니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걸 느끼게 되지요.
걸프전의 영웅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은 자서전에서 처음 별을 달았을 때의 변화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사람이 내 너절한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은 슈워츠코프 장군과 다른 생각을 하지요.
자신의 농담이 너절한 걸 모른단 말입니다.
스스로 엄청 유머러스하며, 따라서 자신이 인기가 많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믿게 되는 거죠.
마음속에 자만이 싹을 틔우고, 교만의 줄기를 따라 자만의 잎이 자라며, 오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스스로 자존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그러한 권력의 장식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지요.
오만한 권력의 열매는 여러 모양으로 열립니다.
횡포의 얼굴을 갖기도 하고, 부패의 냄새를 피우기도 하며, 청맹과니의 옷을 입기도 합니다.
스트로스칸의 경우는 그것이 성적으로 나타난 경우일 뿐입니다.
자신의 너절한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매력에 반했으며,
자신과 성관계를 갖기 원할 거라고 착각하는 거죠.
프랑스 재경장관 시절 그를 취재하는 여기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면서
“특종을 원하면 밤낮 아무 때나 전화하라”고 말했다는 오만이 달리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정적의 몰락에 신이 났겠지만,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오만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교양이 부족하다는 평가에 자극을 받아 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다니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기자에게 욕설을 퍼부어 망신을 당하기도 했지요.
내친김에 좀 더 가볼까요.
드골 대통령은 자신을 줄기차게 비판하는 사르트르를 관용하는 덕을 발휘했지만 그 역시 오만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1961년 알제리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측근들의 조언에
“프랑스가 어떻게 프랑스에 감사하느냐”고 반문했다지요. 그런 오만이 결국 불명예 퇴진을 초래하고 맙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이 눈 아래로 보이기 때문에 오만하기 쉽습니다.
높은 언덕에 오를수록 더욱 깊이 파내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낮춰야 떨어져도 다치는 않는 겁니다.
외워두면 도움이 될 영국 격언이 있습니다.
‘오만이 앞장서면, 치욕이 뒤따른다(Pride goes before, shame follows after)’.
프랑스 격언은 좀 더 구체적인데 몰랐나 봅니다.
‘오만이 앞장서면, 망신과 손해가 뒤따른다(Lorsque l’orgeuil va devant, honte et dommage le sui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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