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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행복&소망^-^]/믿음과말씀

이사람을 보라

by 만경사람(萬頃人) 2020. 4. 5.

          2020'  04.  05    요한복음 18 : 38~19 : 9


종려주간.

이 순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적,

이스라엘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스스로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하는 고난을  겪게 하므로서,

많은 번민과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힘들어 했을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십자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보라"며 소리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예수님의 어떤 면을 바라 보아야하는지요?


1. 죽음 앞에 침묵한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요.

   예수님은 부루의의 재판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19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 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 하시는지라"

예수님은 죽는 그 순간에도 묵묵히 침묵하시면서 십자가를 짊어 지셨습니다.

어떤 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몇가지 표지"라는 글을 썼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다섯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불평없이 고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 예수님 닮은 사람은 해명없이 오해 받는 사람입니다.

셋째, 예수 닮은 사람은 보상없이 줄 수있는 사람입니다.

넷째, 예수 닮은 사람은 울분없이 무시 당할 수있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예수 닮은 사람은 오해 받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 죄 없이 스스로 죽은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요.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예수님 사건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에게 어떤 죄를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고발한 죄는 유대 종교와 율법에 관한 죄였고, 증인이 있다고 하나, 허술한 증인이요,정치적 악의와 종교적 편견으로 가득한 증인이었습니다.

오히려 빌라도가 볼때는 바라바가 죄인이었습니다.

재판장이 죄가 없다고 세번이나 선언했는데도 예수님은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며, 죄인처럼 스스로 죽임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미워하는 마음. 분노. 갈등을 버리고 예수님 따르는 기회로 삼아 보시길 바랍니다.

죄없이 스스로 죽은 분이 우리가 믿는 구주이십니다.

그분처럼 사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이 사람을 보라" 죄없이 스스로 죽임을 택한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3.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신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요.

   "빌라도가 이사람을 보라"고 외친 마지막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죽여 남을 살렸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죽음이 개인적으로 보면 죄없이 죽은 의로운 죽음이었습니다.

관계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을 살려 낸 속죄적 죽음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바라바였습니다. 그는 마땅히 죽고 예수님은 마땅히 살았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의 속죄를 안고 죽임을 택하셨고, 바라바는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임을 택하므로 인하여 대신 바라바가 산 것이었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죽어야 할 나는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은 나 때문에 죽은 사건입니다.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신 예수님의 삶이 언제나 우리가 실천해야 할 모범적인 삶의 지표입니다.


   죽음 앞에 침묵한 예수님의 실천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적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죄없이 스스로 죽은 예수님을 바라 봅시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니, 남과 다투며, 살지 맙시다. 

우리도 나를 죽여 남을 살립시다.

이 아름다운 사순절에 우리 신앙과 삶의 좌표인 예수님을 바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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